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본 칼럼은 2021. 4. 9.자 토론토 중앙일보(종합 4면)에 기고된 이승엽 변호사의 한국법 칼럼으로서 중앙일보 홈페이지(www.cktimes.net)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토론토 중앙일보에 한국법 칼럼을 연재할 이승엽 변호사입니다. 저는 대한변호사협회 소속 한국변호사이자 온타리오주 변호사협회 소속 캐나다변호사로서 지난 십여 년간 대한민국 대검찰청 및 대형로펌 등에서 활동한 바 있습니다.


그동안 캐나다에 한국법을 다룰 수 있는 변호사가 없어 교민분들께서 한국 법률문제에 직면했을 경우 이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으셨을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제 칼럼을 통해 교민 여러분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수 있길 희망합니다.


그럼 오늘의 주제인 ‘소멸시효’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소멸시효란, 권리자가 권리를 일정기간 행사하지 않은 경우 그 권리를 소멸시키는 제도를 일컫습니다. 이는 설령 권리자에게 권리가 진정으로 발생하였고 피치 못할 개인적 사정 때문에 이를 행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법에서 정한 일정기간이 지나면 처음부터 그러한 권리가 없었던 것처럼 간주하는, 매우 가혹한 제도입니다.


실제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미국 교민께서 운영하는 A업체가 한국에 소재한 B업체와 물품공급계약을 체결한 후 약정대로 물품을 납품하였습니다. 이제 B업체가 A업체에게 대금을 지급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B업체는 ‘요즘 회사가 많이 어렵다’는 등 갖은 사유를 들면서 그 지급을 미룹니다. 그럼에도 A업체는 ‘계약서가 있으니 괜찮겠지’라는 생각과 이역만리에 있는 B업체를 상대로 법적 수단을 강구하는 것에 느끼는 부담 등 때문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버립니다. 이렇게 소멸시효기간(이 경우 3년)이 지나버리면 A업체의 권리는 소멸되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안타깝게도 A업체는 소 한 번 제기하지 못한 채 수십만 달러 상당의 채권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또다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C는 2008년경 D와 이혼하면서 D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 E를 C가 양육하되 D로부터 다달이 양육비를 지급받기로 합의했습니다(이는 민법 및 가사소송법상 양육비부담조서 제도가 도입되기 전입니다). 이후 C는 E를 데리고 외국으로 이민한 후 E를 수년간 혼자 양육했는데, D로부터 양육비를 거의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C는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이 바쁘고 D를 상대하는 것에 심적 부담을 느낀 나머지 아무런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D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지만, 소멸시효기간(이 경우 3년)이 이미 지나버린 수천만 원 상당의 양육비는 지급받지 못하였고, 시효기간이 지나지 않은 양육비만 일부 받을 수 있었습니다.


소멸시효제도에 대한 대한민국 법원의 태도는 매우 엄격합니다. 이는 최근 판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약 15년간 임금을 받지 못한 채 공장에서 하루 10시간씩 노동을 강요받아 온 지적장애 모자(母子)가 공장주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소에서, 법원은 모자가 소를 제기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난 채권들은 시효가 완성되어 소멸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에 위 모자는 장애인학대 사건과 같은 특수한 경우조차 소멸시효 진행에 관한 예외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심판까지 청구였으나, 헌법재판소도 위 모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소멸시효기간과 소멸시효가 시작되는 시점(이를 ‘기산점’이라 합니다)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시효기간과 기산점은 개개의 사실관계 및 권리의 종류에 따라 너무나도 다양할 수 있어 본 칼럼에서 이를 일일이 설명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가장 일반적인 경우 세 가지만 말씀드리면, (1) 상인이 판매한 상품의 대가는 대금채권발생일로부터 3년, (2)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은 피해자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 (3) 일반적인 채권은 채권발생일로부터 10년입니다.


많은 교민분들께서 한국 거주 지인들을 상대로 각종 권리를 보유하고 계심에도 본업이 너무 바빠서, 또는 인터넷이나 항간에서 떠도는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해 때문에 결국 시효에 걸려 소중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해보지도 못한 채 시효로 상실하는 사태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본인에게 권리가 있다면, 가능한 한 이를 신속하게 행사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이를 영영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한편, 법적으로 소멸시효를 중단할 수 있는 방법들도 존재하는데, 다음 편에서는 이 중 교민분들께서 한국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의사항: 상기 내용은 한국법에 관한 일반사항을 서술한 것에 불과할 뿐 법률자문이 아니므로 단순 참고용으로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중앙일보와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법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습니다.